금전고택
최종응선생(1873~1943)의 자(字)는 성문(聲聞), 호(號)는 금전(琴田)이고, 영남 삼로(三老)의 한 분이신 백불암(百弗菴) 최흥원(崔興遠)의 6대손(六代孫)으로 국채보상운동(國債報償運動) 대구 유림대표(儒林代表)이신 최시교(崔皆敎)의 조카이시다. 최종응 선생(先生)은 1920年 대한민국 임시정부(臨時政府)로부터 독립운동(獨立運動) 자금책(資金責)인 경북 선정사로 임명(任命)되어 고정일, 윤철, 이태훈 등과 함께 독립운동 자금조달(資金調達)을 위하여 경상, 충청, 전라 등지를 순방(巡訪)하면서 동지(同志)를 규합(糾合) 군자금(軍資金) 모금(募金)을 위해 적극 노력하였다. 동년(同年) 11월에는 조석환 등에게 독립운동자금 8백만원을 받아 임정(臨政) 파견원(派遣員)인 고일치에게 전달하기도 하였다.
1921年 2月 경북 칠곡(漆谷)군에 사는 윤병돈 등으로부터 군자금 3백만원을 받아 임정요원(臨政要員) 이태운에게 전달하였다. 이 일로 인하여 일본 경찰에 체포(逮捕)되어 1922年 3月 30日 대구 지방법원(地方法院)에서 징역(懲役) 3년의 형(刑)을 선고(宣告)받고 옥고(獄苦)를 치렀다. 정부(政府)에서는 선생의 공훈(功勳)을 기리어 1990年 건국훈장(建國勳章) 애족장(愛族章)을 추서(追敍)했다.
최종응(崔鍾應)선생 생가(生家)
대구 옻골마을 금전고택(琴田古宅)은 독립운동가 최종응 선생의 생가로, 역사적 의미와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을 동시에 간직한 공간입니다. 금전고택은 대구광역시 동구 옻골로에 위치해 있으며, 옻골마을의 대표적인 고택 중 하나입니다. 이곳은 임시정부 시절 독립운동 자금책으로 활동하다 옥고를 치른 최종응 선생(1873~1943)이 살던 집으로, 선생은 백불암 최치원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의 공훈은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로 기려졌습니다.
고택은 전형적인 전통 한옥 구조를 지니며, 운치 있는 마당과 소박하면서도 기품 있는 건물 배치가 특징입니다. 건평은 약 13평 규모로, 의실과 백실 두 개의 객실을 갖추고 있으며, 최대 6명까지 숙박이 가능합니다. 내부는 전통미를 살리면서도 현대적 편의시설을 갖추어 쾌적하게 머물 수 있도록 꾸며져 있습니다. 취사와 바비큐가 가능하며, 마을 투어 프로그램도 포함되어 있어 방문객들이 옻골마을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옻골마을은 400여 년의 역사를 지닌 전통마을로, 금전고택을 비롯해 여러 고택들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특히 가을 단풍철에는 고즈넉한 한옥과 어우러진 풍경이 아름다워 산책하기 좋은 명소로 꼽힙니다. 주변에는 경극고택, 평광동 사과마을 등 다양한 관광지와 체험 공간이 있어 여행객들에게 풍성한 즐길 거리를 제공합니다.
금전고택은 단순한 숙박 공간을 넘어, 독립운동의 정신과 전통문화의 가치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살아 있는 역사 공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옻골마을을 찾는다면 꼭 들러볼 만한 의미 있는 장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