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불고택
조선 인조 때의 학자 대암 최동집(臺巖 崔東像)이 1616년 옻골에 정착하면서 그 이후에 지은 집으로, 대구에 있는 조선시대 주택 중 가장 오래되었다. 1630년에 지은 안채와, 원래 백불암 최흥원(百弗庵 崔與遠)을 추보하기 위해 설립한 동산서원이 1868년 훼철되면서 그 자재를 사용하여 다시 저은 사랑채,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어진 보본당과 포사, 그리고 불천위 사당인 벌모와 가묘 등이 있다.
생할 공간의 오른쪽에 있는 보본당은 1753년에 지었으며, 보본당의 동쪽 담장 밖에 위치한 포사에서는 제사음식을 준비하였다고 한다. 보본당 뒤편에 있는 2동의 사당 중 벌묘는 최동집의 위패를, 가묘는 조선 정조 때의 학자인 최흥원의 위패와 종손의 4대 봉사위 위패를 모시고 있다. 살림채와 재실 그리고 사당 등 많은 건물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는 대구 둔산동 경주최씨 종택은 조선시대 양반 주택과 그 생활양식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지료가 되고 있다.
대구 둔산동 경주최씨 종택 (大邱 屯山洞 慶州崔氏 宗宅)
백불고택(百弗古宅)은 대구 동구 옻골마을에 위치한 경주 최씨 종가로, 1694년(숙종 20)에 건립된 대구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상류주택이자 국가민속문화유산 제261호로 지정된 고택입니다.
옻골마을은 조선 중기 학자 대암 최동집이 정착하면서 형성된 경주 최씨 집성촌으로, 현재도 20여 채의 전통 가옥이 남아 있습니다. 그중 백불고택은 입향조 최동집의 손자 최경함이 건립한 종가로, 후손인 학자 백불암 최흥원의 호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건물은 ㄷ자형의 정침과 일자형 사랑채가 결합된 口자형 배치를 이루며, 오른쪽에는 가묘·별묘·보본당 등 조상 제사를 위한 공간이 자리합니다. 정침과 가묘는 1694년에, 별묘와 보본당은 1742년에 건립되었고, 사랑채는 1905년에 중건되었습니다. 이러한 건축 구성은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종가의 위상과 제례 기능을 함께 담아낸 전통 한옥의 전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백불고택은 단순히 오래된 집이 아니라, 경주 최씨 종가의 정신과 생활상을 보여주는 역사적 공간입니다. 옻골마을 입구에는 350년 수령의 느티나무와 회화나무가 보호수로 서 있어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고택 내부와 주변은 고즈넉한 돌담길과 전통 가옥들이 어우러져 있어, 조선시대 양반가의 생활을 가까이에서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백불고택은 문화관광 해설사의 안내와 함께 일반인에게 개방되어 있으며, 국내외 관광객들이 옻골마을을 찾는 주요 이유 중 하나입니다. 전통 건축미와 독특한 역사적 가치를 간직한 백불고택은 대구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으로, 옻골마을을 방문한다면 반드시 둘러봐야 할 명소입니다.













